신석구(1875–1950)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기독교 목회자이자 독립운동가로, 1919년 3·1운동 33인 민족대표 중 한 사람입니다. 1930년에 작성된 이 자필 시문은 그의 문학적 교양과 도덕적 신념이 고스란히 담긴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 생애와 업적
충북 청주 출신인 신석구는 유교적 가정에서 성장했으나, 1907년 개종 후 협성신학교를 거쳐 1917년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3·1운동 참여로 투옥되었으며, 이후에도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 창씨개명 명령, 태평양전쟁 시 ‘승전기도회’ 등에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광복 후에도 북한에 남아 공산정권에 반대하며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다 1950년 평양형무소에서 총살되었습니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고, 청주 삼일공원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 시문: 금암 어른의 연수연을 경축하며
이 시문은 유교적 덕목과 기독교적 도덕성을 함께 담아낸 문체로, 전통적 장수축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금암 어른의 연수연을 경축하며
수연의 잔치엔 술이 있고 우리는 술잔을 올립니다.
누가 감히 그대의 인격을 따를 수 있을까요?
낙양의 세대에 전해지는 그 사업은 참으로 찬란하며
평지에 세워진 신선의 깃발 같도다.
매일 세 번 자성하는 그 엄정함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덕행의 기름짐은 오복을 부르는도다.
난초 향기 가득한 정원에 가야금 소리에 맞춰 춤이 어우러지고
천년의 해루각은 주저 없이 상서를 전하네.신석구 삼가 씀
📚 역사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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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민족대표의 육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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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과 독립운동이 결합된 희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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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문체와 기독교 정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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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적 저항
신석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