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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립: 태백교 창설자이자 『환단고기』 논란의 중심인물

2024년 10월 4일

이유립: 논란의 민족주의자이자 종교 지도자

1. 생애와 배경
이유립(1907년 12월 18일 – 1986년 4월 18일)은 한국의 종교인이자 민족주의 활동가로, 소수 종교 단체인 태백교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안북도 삭주군 구곡면에서 태어났으며, 고려 말의 문신 이암의 후손이다. 본관은 고성이며, 채영(采暘), 정정(貞正), 한암당(漢巖堂), 정상초인(貞山草人), 단하산인(丹霞山人), 호상포각(壺上布閣), 단학동인(丹學洞人) 등의 다양한 호를 사용하였다.

2. 독립운동 참여 주장
이유립은 자신이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으며, 1921년에는 조선독립청년단을 조직해 단장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삭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1930년대에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잡지 『조선』에 시를 발표하는 등 문학 활동도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독립운동 참여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자서전적 자료에만 근거하고 있으며, 다른 사료에 의해 교차 검증되지는 않았다.

3. 친일 행적에 대한 의혹
그가 자칭 민족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한 이력도 있다. 그는 조선유도회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며 기관지 『일월시보(日月時報)』의 편집장을 맡았고, 중일전쟁 이후 친일 성향으로 변한 『동아일보』의 삭주지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력은 그의 행보에 대한 비판과 의혹을 야기했다.

4. 종교 활동과 『환단고기』 논란
이후 이유립은 단학회, 태백교 등의 민족 종교 활동에 전념하였고, 단단회라는 조직을 새롭게 구성하며 민족주의 종교로 개편하였다. 그는 한국 고대사를 담은 것으로 알려진 『환단고기』의 관리자로 자처했으나, 많은 학자들은 이 책이 이유립 본인이 창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책에는 일본과의 혈통 일체성을 주장하는 친일적 서술이 포함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는 이 책을 박창암 장군에게 넘겼고, 박 장군은 이를 일본의 우익 사학자인 가시마 노보루에게 전달했다. 가시마는 『환단고기』를 한일동조론(일선동조론)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높이 평가하며 이유립을 찬양했으며, 이로 인해 논란이 더욱 확산되었다.

5. 죽음과 유산에 대한 평가
이유립은 1986년 4월 18일, 78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는 종교와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 이어갔지만, 그의 행적은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다. 독립운동가로 기억하고자 하는 시도와 달리, 일제와의 협력 및 『환단고기』의 조작 논란은 그의 평가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의 삶은 일제강점기의 복합적인 정체성과 시대적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