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승(鄭寅承, 1897–1986)은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서예 또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건재(健齋)’라는 호를 사용한 그는, 붓글씨를 통해 학문적 엄정함과 민족의 혼을 표현하였다.
그의 서체는 단정하고 기품 있으며, 글씨 하나하나에 언어를 사랑한 학자의 절도가 배어 있다. 조선어학회에서 국어사전 편찬에 헌신하며 일제의 언어 탄압에 맞섰던 그는, 감옥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글씨와 언어를 지켰다. 그의 서예에는 단지 미적 요소만이 아니라, 말과 글을 지키고자 했던 실천적 지식인의 의지가 녹아 있다.
해방 이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서예 또한 교육의 일부로 삼았던 정인승은, 단순히 글씨를 잘 쓰는 인물에 머무르지 않고, 언어와 문화를 지키는 ‘문화 투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의 서예는 지금도 정인승기념관(전라북도 장수군)에 일부 소장되어 있으며, 당시의 시대정신과 결기를 생생히 전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