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1889–1930)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청산리 전투의 지휘관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무장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으며, 김동삼, 오동진과 함께 ‘3대 맹장’으로 불렸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김좌진 장군의 편지는 참위(參尉)에게 보낸 것으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개인적 심정을 절제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금성에 머무는 동안 건강 악화와 향수병을 겪으며, 피어나는 매화꽃을 통해 스스로의 외로움과 인내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편지에는 부모에 대한 공경, 사촌의 혼례에 대한 염려, 고모님의 팔순 경축일을 기억하려는 애틋한 마음 등이 담겨 있어 김좌진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단순한 사적인 문서를 넘어, 독립운동가의 정신적 품격과 시대적 배경을 생생히 전해주는 사료로 평가됩니다.
1930년 박상실에게 암살되기 전까지 김좌진은 독립군 양성, 무장투쟁, 그리고 자치기구 설립에 헌신하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 “할 일이 너무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한스러워서…”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단지 가족을 향한 정서를 넘어서, 격동의 시대 속에서 고귀한 삶을 살았던 독립운동가의 정신과 결기를 전하는 귀중한 역사적 증거입니다.
번역:
참위(參尉) 보시게. 한 해가 저물고 날씨가 추운 때에 그리운 마음이 더욱 간절하네. 부모님은 잘 모시고 있는지, 고모님의 기력은 건강하시며 식구들도 모두 잘 있는지 궁금하네. 올겨울 동안 봉양할 양식을 마련하였는가? 그리운 마음이 멀리서도 그칠 길이 없네.
나는 금성(錦城)에 머무는 반년 동안 풍토가 맞지 않아 기가 답답하고 담이 막혀 매우 고민이네만, 그렇다고 어찌하겠는가. 머무는 곳에 매화나무가 세 네 그루 있는데, 추위를 무릅쓰고 활짝 피어 사람의 마음을 서글프게 하네. 갓옷을 겹쳐 입고 꽃을 마주하니, 꽃은 사람이 시든 줄 모르고, 사람은 꽃이 추운 줄 모르니, 둘이 함께 시름을 나누고 있네. 요즘의 삶이란 그저 이럴 뿐이네.
도종(道從, 사촌)이 가을쯤 그 형의 혼례를 치른다고 했는데, 그 사이에 혼례는 치렀는가? 멀리서 공허한 염려만 할 뿐이네. 내년 봄이 고모님의 팔순 경축일이신데, 수십 년 동안 풍상을 겪다 보니 달만 기억하고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네. 인편이 있을 때 날짜를 알려주기 바라네.
그럼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아 부모님을 모시고 만복을 누리기를 비네.
김좌진(金佐鎭) 종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