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상이 쓴 글씨는 화려하지 않다. ‘金’ 자는 중심을 단단히 지킨 채 낮게 눌러 앉아 있다. ‘永’ 자는 중심 획이 수직으로 뻗어 나가되, 붓끝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 아래로 흐르는 점획들은 부드럽되 흐트러지지 않는다. ‘相’ 자는 구조적으로 복잡하지만, 절제된 호흡으로 차분히 내려썼다. 긴 가로선, 어느 곳 하나 빈틈없이 꽉채워지고 단단한 필체. 그는 과시하지 않고, 자신에게 엄격하며, 바른 사람이었다. 너무 올곧아서 세상과 타협할 수 없었던 사람의 손끝이 아니면 이런 글씨가 나오기 어렵다.
우리에겐 수많은 김영상이 있었다. 이들은, 무명 속에서 조용히 옳은 길을 선택했다. 격문을 썼고, 투쟁했으며, 혹은 옥사했다. 그들에게 훈장이 주어지기도 했으나 잠깐의 영광일 뿐 세상은 그들을 잊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지키려고 한 것은 유명세가 아니라 신념이었고, 권력이 아니라 양심이었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있다.
우리는 이제라도 그들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누군가는 그 이름을 기록으로 남기고, 누군가는 그 정신을 글로 써야 한다. 광복절이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날이 되려면, 김영상 같은 이름들이 공식 석상에 나와야 한다. 광복은 빛나는 이름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림자처럼 조용히 옆을 지킨 이름 없는 사람들의 합창이었다. 오늘, 그들을 위해 머리 숙여 이름을 부른다. 김영상.
조선일보 2025. 8. 19.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