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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상룡의 친필 편지

2024년 9월 3일

이상룡(1858년 음력 11월 24일 ~ 1932년 6월 15일)은 한 집안이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번역:

일전에 교동편을 통하여 몇 자 편지를 올렸는데, 이제 주신 편지를 받음에 한마디 말씀이 없으니, 받아보지 못하신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대략 말씀드린 것은, 작별하여 만나지 못한 지 사오 년이 되었는데, 수염이 이미 몇 치나 자랐으니 다음에 서로 만났을 때, 만일 알아보지 못하고 의심하게 된다면 다만 일편의 마음을 가지고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이 마음이 가슴속에 감추어져 있어서 견디다 못해 쪼개어 사람들에게 들어 내 보이지 못하는 것이 한입니다.

또 말하되, 세상의 훌륭하고 품행이 올바른 사람들을 제가 대략 많이 보아 왔는데, 이로운 쪽으로만 달리는 자는 모래알 같고, 명예로만 달리는 자는 조약돌과 같으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달리는 자는 마치 밤에 빛나는 밝은 달빛과 같아서 천백 명 중 겨우 한두 사람이 얻게 될 뿐입니다. 형께서는 재주와 식견이 여유가 있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 참으로 지혜롭고 참된 사람이니 어찌 감탄할 바를 성취하지 못하겠습니까? 형은 나이가 스무 살이고 기개가 예민하나, 강철 조각으로 많은 화살촉을 물리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제가 이곳에 있고자 하는 것은 부모님의 병환 때문에 걱정되고 눈물짓는 외에, 시골에 전염병이 돌고 있는 것과 아이의 마마병으로 인해 백 가지 근심으로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이 마치 쌀과 같아서 어제는 즐겨 먹고 지냈으나, 내일에는 갚아줘야 하여, 결과적으로는 어제의 내일이 반대로 내일의 어제가 되는 것이니, 이렇게 몇 해를 보내 왔습니다. 반평생을 이와 같이 얼룩지게 지내게 될 것입니다. 쌀도 줄기가 얼룩진 것을 거쳐 희게 되고, 흰 것을 거쳐 늙게 되니,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밖에 안 되는 시간이라니 서글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끝으로 말씀드리자면, 일전에 천상에 행차한 것은 다만 수옹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형의 성의를 어긴 것이 거의 19차례인데, 형이 마침내 제가 가는 것을 미리 알고 오지 않는다면, 후에 함께할 길이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형을 생각하는 것이 마침내 고치지 못할 병이 된 것입니까? 이 말은 모두 실제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형을 만약 만나 본다면 어떻게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눌연은 여름을 보낼 계획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처럼 강산을 좋아하는데, 하루를 넉넉히 풍류를 즐긴다면 그것이 곧 청복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몇 개월 동안의 긴 날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러운 마음이 지극하나 다만 돕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러나 오륙일 후에는 길협으로 약을 지으러 갈 것 같으니, 이 기회에 만약 시간이 생기면 마땅히 청산록수 같은 그리운 형을 방문할 것입니다.

지난 가을의 일은 너무 드러나서 구제할 수 없는 데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돕거나 나무라는 방법은 돌은 다듬을 수 있고, 금은 녹일 수 있어서 스스로에게 내맡기고 돌보지 않는 것입니다. 형은 또 탁월하고 홀로 서 있으니, 이른바 말을 덮어버리고 반대로 들어주는 것입니까? 깊이 두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형께서 향교의 임원으로 있을 때, 일편의 글자로 ‘轟然可當’이라는 네 글자로 제목을 하였었는데, 그것은 형의 편파적인 처세였습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말씀하셨던 ‘작은 강철로는 많은 화살촉을 쉽게 물리칠 수 없다’고 한 것은 잘 보신 점입니다. 이 문제를 형께서 상세히 생각해 보셨습니까? 생각했던 것이 산과 바다처럼 많았는데, 인편이 바빠 나머지는 빠뜨리고, 모든 것은 형께서 살펴주십시오. 하계의 상사는 지난 편지에서 조문하였기에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을유년 4월 초 5일 손제 이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