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金基昶, 1913년 2월 18일 ~ 2001년 1월 23일)은 대한민국의 동양화가로, 호는 운보(雲甫), 운포(雲圃)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서 태어난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김기창은 1913년 서울 운니동에서 아버지 김승환과 어머니 한윤명 사이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어린 시절 잠시 충청남도 공주에서 보내기도 한다. 여덟 살 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상실하고, 그로 인해 언어 장애를 겪게 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예술적 재능을 발견하고,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동양화를 배우게 한다. 김기창은 1931년 조선미술대전에 처음 출품한 후 1940년까지 총 6회 입선, 특선 3회를 기록하며 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24살 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김기창은, 27살에 선전 추천작가가 된다. 그러나 그 시기, 일제의 내선일체 사상을 정당화하는 친일 활동에 연루되기도 한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일제 말기의 친일 미술 전시회인 반도총후미술전에 참여하며, 일본화부 추천작가로 활동한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후에 친일 논란의 대상이 된다. 또한, 1940년 조선남화연맹전과 1943년 애국백인일수전람회를 통해 일제의 기금 모집에 협력한다.
1943년 김기창은 동양화가 박래현과 처음 만나 3년간의 필담 연애 끝에 1946년 결혼한다.
1957년 김기창은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주최의 한국 현대작가전에 초대되어 출품한다. 1960년 국전 초대작가로 선정되며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타이베이, 홍콩, 도쿄, 마닐라 등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 출품하여 국제 무대에서 한국 미술을 알리는 데 기여한다. 1962년 수도여자사범대학(훗날 세종대학교)으로 교직을 옮겨 문화자유전에 출품하고, 1964년에는 미국무성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 1969년에는 다시 미국으로 가 뉴욕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홍익대학교와 세종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쓴다.
1979년 김기창은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에 취임하고, 1984년에는 서울 역삼동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인 청음회관을 설립한다. 이를 통해 청각장애인들의 복지 증진에 기여한다.
김기창의 작품은 한국적인 정서와 전통 동양화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들은 선과 색채의 조화를 통해 독특한 미적 감각을 표현하며, 특히 말년에는 종교적인 주제와 한국의 자연을 담은 작품들을 다수 선보인다.
김기창은 평생 동안 수많은 상을 수상하며 그의 예술성을 인정받는다. 그는 한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동양화가로, 그의 예술적 유산과 사회 공헌 활동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