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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상 최고의 명필, 안중근

2024년 7월 29일

한국 역사상 최고의 명필은 누구일까? 보통 추사 김정희, 석봉 한호, 원교 이광사를 떠올릴 것이다. 명필의 기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격, 국가유산 지정 건수와 같이 숫자로 나타나는 지표도 있다. 이 두 가지로 보면 안중근 의사가 단연 최고이다. 우선 가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안 의사의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모습이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의 모습에 비하겠는가(龍乕之雄勢豈作蚓猫之熊)“는 2023년 12월 19억 5000만 원에 낙찰됐다.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지만 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人心朝夕變山色古今同)”는 2024년 2월 13억원에 낙찰됐다, 2006년 12월 “성패는 하늘의 뜻에 달렸다(謀事在人 成事在天)”가 4억 6,000만 원에 낙찰된 이후 가격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글씨의 가치를 잘 알아주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이례적이다. 시장의 평가는 웬만한 전문가보다 더 정확하고 냉정하다. 다음으로 국가유산(보물)으로 31점이 지정되어 단연 최고이다. 김정희, 한호, 이광사 모두 합해도 이 숫자가 안 된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를 공식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안 의사의 글씨는 왜 이렇게 비싸고 귀하게 여겨질까? 글씨가 좋아서 일까, 아니면 인품 때문에 그럴까? 인격이 글씨와 일치하는지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논쟁이 있었다. 청나라의 전대흔(錢大昕)은 예술과 인품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명나라의 풍반(馮班)은 예술과 인품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 중간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 소식(蘇軾)인데, 예술이 분명 인품과 관련은 있지만 기교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20여 년 동안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를 수집하고 연구한 경험에 의하면 인격이 글씨에 정확히 드러나고 상당 부분 비례한다. 그러니 인품에서 최고 수준인 안 의사의 글씨가 최고 수준일 수밖에 없다.

글씨로서 갖추어야 할 것을 모두 갖추고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하나하나 따져 보자. 필획이 두텁고 법도가 엄정하며 단아하고 침착하며 강인하고 용기백배하다. 2009년 말 안 의사 순국 100년 기념 유묵전에 몇 번이나 갔는데 글씨가 내뿜는 강인한 힘과 무게, 기품에 눌려 서있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송곳 같은 예리함, 강한 기세, 서릿발 같은 기상,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가 느껴진다. 항일운동가 필체의 가장 큰 특징은 ‘각’인데 이는 강한 의지의 표출이다. 안중근의 글씨는 그 중에서도 대표격이어서 굳고 바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송곳같이 강한 필압은 정신력과 에너지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글자나 행의 간격으로 보아 자기 확신이 강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있다. 다른 시절에 태어났더라도 반드시 큰 일을 했을 인물이다.

동양의 서법으로 보면 안 의사의 글씨는 안진경체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필획이 두텁고 정확하며 법도가 엄정하다. 머리를 감추고 꼬리를 보호(藏頭護尾)한다는 서법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운필과정에서 붓을 들고 누르는 가운데 필압의 경중과 지속의 대비가 분명하여 긴장과 이완을 극대화한다. 나라를 위해 유사시에 몸을 던지는 조선 선비의 사상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긴 안 의사가 만고의 충절로 불린 안진경의 글씨체를 닮은 것은 당연하다.

안 의사의 글씨는 확실한 차별성이 있다. 첫째, 전성기이자 생의 마지막 시점에 썼다. 지금까지 알려진 글씨는 1909년 10월 26일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때부터 1910년 3월 26일 순국할 때까지 40일 동안 쓴 것이 대부분이다. 당시 안중근의 글씨를 받은 사람은 히라이시 우지히토 고등법원장 등 판사, 검사, 서기, 변호사, 경찰, 감옥 간수, 헌병, 통역 등 일본인들이었다. 일본인들은 자기 나라의 대신을 죽인 안중근의 글씨를 받기 위해 비단과 종이 수백 장을 사 넣으며 줄을 섰다고 한다. 무명에 불과했던 안 의사의 학문적 깊이, 의기 있는 행동과 말이 일본인들을 감복시켰기 때문이다. 글씨를 받은 일본인들이 몰래 숨겨 고향에 가져가서 죽을 때 까지 간직했었기 때문에 50점 정도가 실물 또는 사진으로 남아있다. 대의를 위해 거사한 사람이 사형 집행을 앞두고 쓴 글씨들이다. 원래 미술품은 전성기의 것을 최고로 치지만 글씨는 마지막에 쓴 것을 최고로 친다. 둘째,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단지된 손도장과 ‘대한국인 大韓國人 안중근’이라는 문구이다. 어느 누구도 도장 대신 손도장을 찍지 않았지만 안 의사는 조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면서 단지한 손도장을 찍었다. 거기에 ‘대한국인 안중근’이라고 썼으니 그 감동과 차별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글씨를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좋은 글씨체란 무엇일까 하고 늘 고민해왔다. 결국 인격이 훌륭한 사람의 글씨가 최고이다. 거기에 손재주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건 부차적이다. 그런 점에서 독립운동가들의 글씨는 좋은 글씨의 표본일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도 벤자민 탈마주가 서명한 편지가 50만 달러에 거래되는 등 독립전쟁이나 독립선언에 관련된 인물들의 친필이 상당한 고가에 거래된다.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최고봉인 안 의사이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안 의사는 하얼빈 의거말고 글씨 자체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큰 기여를 했다. 좋은 글씨란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가격은 이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