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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돈의 친필 편지

2024년 8월 7일

서상돈 (1851-1913)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초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경상도시찰관, 독립협회 재무부과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대구 출신으로, 천주교 가문에서 태어나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였다.

서상돈은 1866년 병인박해로 인해 가족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겪었으나, 1871년 대구로 돌아와 독학하며 지물 행상과 포목상을 시작, 큰 부를 축적하였다. 1886년경에는 경상도시찰관으로 임명되어 정부의 특명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후 대구교회의 발전에 헌신하며, 지역 경제를 이끄는 거부로 성장했다.

서상돈은 외세의 국권 침탈에 맞서 독립협회의 주요 회원으로 활동하며 민중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1907년 2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제안하였다. 그는 1300만 환의 국채를 갚기 위해 2000만 국민이 3개월간 담배를 끊고 그 대금 20전씩을 모아 국채를 상환하자는 취지의 국채보상취지서를 발표했다.

이 운동은 전국적인 호응을 얻었지만, 일본의 탄압으로 좌절되었다. 그럼에도 모인 자금은 이후 민립대학 설립운동에 사용되었다.

서상돈의 국채보상운동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상징적인 운동으로, 이후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번역 :

봄비가 넉넉히 내려 만물이 새로워지는 이때, 삼가 여쭙건대 형제분들의 평안하신 기체후가 더욱 경사롭고 덕으로 덮여 평안하신지 우러러 축원합니다. 저희 부모님의 안부도 평안하시고, 식구들도 특별히 놀랄만한 일이 없으니 이 다행함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아드님의 다시 오심이 지연된 것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희 집안에서 그렇게 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런 결과가 되었습니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즉시 명하시어 보내주시기를 청합니다. 또한, 형님께서도 함께 와주신다면 얼마나 큰 다행이겠습니까?

나머지는 형님께서 오시는 소리만 기다리며, 예를 갖추지 못한 채 안부를 전합니다.

신사년 3월 15일

아우 서상돈 재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