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채(1888~1948)는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자는 공삼(公三), 호는 경산(庚山), 동아(東啞), 우정(宇精)이며, 이규보(李圭輔)라는 다른 이름도 사용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창신 서화 연구회를 창설하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비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일본 경찰에 발각되자 1921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192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 의정원의 충청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1925년에 사임하였고, 1930년 한국 독립당에 가입하여 정치부 위원과 군사부 참모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그는 1932년 중국의 군사 지도자들과 공동 항일전 합작을 협의하고, 한국 독립당의 총무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만주에서 베이징으로 본부를 이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33년에는 중국 지린 육군 제3군 상교 참모로 활약하였고, 1934년 신한 독립당을 조직하여 감찰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35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경성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에는 미소 공동 위원회 대책 국민 연맹 대표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1948년 2월에 사망하였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