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진(金嘉鎭, 1846~1922)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
1910년, 일제 강점 후 조선귀족령에 의해 남작 작위를 받았으나, 1919년 의친왕 망명 시도에 가담하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와 그의 아들 김의한은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였고, 김가진은 김좌진 장군이 이끌던 북로군정서의 고문으로도 활동하였다.
김가진은 독립운동 조직 대동단의 총재로 추대되었으며, 대동단은 의친왕을 망명시키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에도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그는 1922년 7월 4일, 77세의 나이로 상하이에서 순국하였다.
번역 : 종오소호
공자의 이 말은 “부가 만약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라면 채찍을 잡고 일을 하는 천한 사람이라도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는 뜻이다.( “부이가구야, 수집편지사, 오역위지; 여불가구, 종오소호.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